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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강좌

적천수 事例 141> 정단註

時 日 月 年 <事例 142>

壬 丙 戊 癸

辰 午 午 巳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此鐵樵自造, 亦長夏天, 與前造只換一丑字, 天淵之隔矣. 夫丑乃北方之溼土, 能晦丙火之烈, 能收午火之焰, 又能蓄水藏金, 巳乃南方之旺火, 癸臨絶地, 杯水輿薪, 喜其混也. 不喜其淸也. 彼則戊癸合而不化, 此則戊癸合而必化, 不但不能助殺, 抑且化火爲刦, 反助陽刃猖狂, 巳中庚金, 無從引助, 壬水雖通根身庫, 總之無金滋助, 淸枯之象, 兼之運走四十載木火, 生助刦刃之地, 所以上不能繼父志以成名, 下不能守田園而刱業, 骨肉六親, 直同畵餠, 半生事業, 亦似浮雲, 至卯運, 壬水絶地, 陽刃逢生, 遭骨肉之變, 以致傾家蕩産, 猶憶未學命時, 請人推算一味虛褒, 以爲名利自如, 後竟一毫不驗, 豈不痛哉, 且予賦性偏拙喜誠實不喜虛浮, 無諂態, 多傲慢, 交遊往來, 每落落難合, 所凜凜者, 吾祖若父, 忠厚之訓, 不敢失墜耳. 先嚴逝後, 家業凋零, 潛心學命, 爲餬口之計, 夫六尺之軀, 非無遠圖之志, 徒以末技見哂, 自思命運不齊, 無益于事, 所以涸轍之鮒, 僅邀升斗之水, 限于地, 困于時, 嗟乎. 莫非命也. 順受其正云爾.

이 命造는 鐵樵 나 자신의 命造로 역시 긴 여름날 태어났으며 앞의 命造와 단지 丑土 한 글자만 바뀌었는데 天淵의 차이가 난다. 무릇 丑土 안에는 北方의 濕土가 포함되어 있으며 충분히 丙火의 猛烈함을 식혀 줄 수 있으며, 충분히 午火의 熾烈함을 거두어 드릴 수 있으며, 또 충분히 水를 貯藏하고 金을 감출 수가 있다. 巳火는 南方의 旺한 火로 癸水가 絶地에 臨하니 한 잔의 물로 한 수레의 섶단에 붙은 불을 상대하는 形象이라, 混雜되어 濕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混雜되지 않고 淸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앞의 命造는 戊癸合을 하였어도 化하지 않았으며 이 命造는 戊癸合을 하여 반드시 化하여서 비단 殺을 돕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抑制하고 또 火로 變하여 刦財가 되어서 반대로 羊刃을 도와 미치고 날뛰게 한다. 巳火 중에 庚金은 끌어당기어 도울 수 없고 壬水는 비록 자기의 庫에 뿌리를 내렸다하여도 結論的으로 도와주는 金이 없어 淸枯한 形象이 되었다.

兼하여 사십 년간이나 木 · 火運으로 옮겨오니 刦財와 羊刃을 地支가 도와주기에 바로 이러하므로 위로는 아버지의 뜻과 이름을 이루지 못하고 아래로는 田園과 創業하신 것을 지키지를 못하고 兄弟와 肉親들은 그림의 떡과 같았으며 半平生을 하는 일이 역시 뜬구름과 같았다. 卯大運에 이르러 壬水가 絶地에 臨하고 羊刃이 生을 만나서 兄弟들에게 變이 생기고 이러한 理致로 집안이 기울고 財産이 물에 쓸려 가는 듯이 살아졌다.

그 위에 더 기억나는 것이 있으니 내가 아직 命을 공부하기 전에 기억나는 것은 사람을 불러 推命을 하였는데 하나의 虛荒된 칭찬으로 名譽와 富를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마침내 후일에 털끝만큼의 효험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괴롭지가 않겠는가? 또한 나의 天性은 지나칠 정도로 서툴러서 誠實한 것은 좋아하고 虛荒하고 뜬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아첨하는 태도가 없고 傲慢한 기운만 있어 다른 사람들과 사귀고 놀고 오고 가는 것에 매번 빠지고 하니 和合하기가 어려웠다. 바로 그러한 것이 건방진 것으로 보였고 나의 祖父나 아버지께서 정성을 다하여 두터이 가르쳐주신 것을 감히 失墜시킬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家業이 시들어 떨어지니,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命을 배우는 것에 깊은 마음을 두었다. 무릇 여섯 자의 몸을 가지고 넓은 지도를 그릴 뜻은 없는 바가 아니었는데, 단지 末年의 기술을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내 스스로 생각하여도 運命은 고르지 않다는 것이고 일을 하여도 利益이 없으니 바로 이러하므로 물 마른 수레바퀴자국 속에 살아있는 붕어와 같은 처지로 한 바가지의 물을 간절히 바라듯 땅의 끝에 서 있듯이 불안하고 세월 가는 것이 답답하고 한탄스럽구나! 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바른 것을 順하게 받아드려야만 한다.

<譯評> 아마도 본인 어려서 부친께서 용한 命理家한데 가서 이 四柱를 내 놓으니, 官殺混雜格이라 흉한데 오히려 混雜된 官을 戊土가 合하여 가니, 유일하게 남은 時干의 偏官을 用하면 귀한 格(時上一位偏官格)의 命運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받은 모양인데, 그런 이론도 필요 없고 오직 日主의 衰旺만 살펴 사주 전체를 中和에 맞추면 된다는 논리이다. 그래도 말년이나마 水大運이 드는 바람에 발이라도 치고 호구지책을 삼고 있다고 自嘲한다.

심효첨은 격국론에서 偏官格으로 보고, 이 格을 定義하기를 煞이 있는데 官星이 섞이면 혹, 官을 제거하던지 煞을 제거하면 淸함을 취하여 貴格이 된다.고 하여 格自體를 大貴格으로 보았다. 아래 글은 譯評者의 논문 중에서 拔萃한 부분이다.

撰輯者인 袁樹刪은 증주자가 스스로 밝힌 명조와 그 설명에 의거해서 증주자의 생애와 사상을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원수산은 위로 아버지의 선업을 이루지 못하고 아래로는 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토로한 것을 보고는 증주자의 조상은 名臣출신으로 중류정도의 가산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간 뒤에 명학에 몰두하여 糊口之策을 삼았다고 한 것을 보고 命理學을 배운 연도가 30년이 넘었다고 추정했다. 또 그의 성품이 古拙하여 아첨하지 못하고, 傲氣가 많아 사람들과 교류 왕래함에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할아버지 아버지의 忠厚의 가르침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 것을 보아, 임철초의 성품이 밝고 절개가 있으며 고풍스럽고 안빈낙도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최근에 나온 연구에 의하면 임철초의 명조를 볼 때 火多者의 특성이 그대로 들어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火가 많은 사람은 치우침이 있고 소심 꼼꼼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傲慢한 것 역시 火多者의 특성이고, 직설적이고 바른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것도 火多者의 특성이다. 그러나 늠름한 기상은 陽刃이 偏官用神을 만나서 貴格을 형성하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심효첨의 격국론과 조후용신론과 정단님의 지수법칙은 생략할 것이다.

 


[정단註]

時 日 月 年 <事例 142>

壬 丙 戊 癸

辰 午 午 巳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염천지절은 오월에 태어나 계수는 말라가고 병화의 뙤약볕에 푹푹찌는데, 다행이 축축한 습토가 열기를 식혀주고 호수가 생겨 빛을 발하니 말년에 아름다운 형국이 되었다.

지수법에 의하면 목0.6 화9.1 토3.0 금0.5 수1.5이다. 화가 극왕한데, 차종주의 생을 얻어 화태왕으로 화체수용이고 수가 허자를 당겨오고 임진에 통근통력을 얻어 용신이 되므로 금수의 재관격에 해당한다. 목화운은 실격운이니 형제도 부모의 덕도 없었지만 46세 이후에 금수운으로 득격하니 발복하여 술가로 명예를 얻은 것이다.

화가 종주이고 극용으로 수를 찾으니 임수가 허자 자수에 통근한다. 진술축미에는 화토는 정기가 아니라도 통근하나 수는 여기통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허자통근이 된다. 사화는 변화의 지지로 천간에 금수와 동주하면 경금이 사나 무계합으로 경금은 죽고 병화가 산다. 그래서 무계합이 오히려 원국의 격을 떨어뜨린 셈이다. 고립무원의 임수가 허자통근을 하니 주변의 지원과 협조로 하는 사업은 하지 못하고 혼자하는 학문연구로 명리학을 하여 귀함을 누렸다. 용신수와 상생을 하는 임자운부터 명리학의 틀을 잡고 명예를 누리게 된다. 술운에 임하면 왕신이 입묘하니 졸하게 된다.

이는 乾隆 38년 4월 18일생인 임철초 자신의 사주이다.

임수편관의 특성상 아부아첨과는 거리갈 멀고 지나친 원칙주의자로 보여진다. 외교적이 못하고 원만하지 못했다.

일주가 공망이면 승도나 은둔생활을 하게 되는데, 명리학에 인연이 되어 연구하고 연마하여 명리의 도를 터득하였기에 수운에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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