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가면 법정스님, 길상화 보살이 생각난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 극락전. 아미타불을 봉안한 본법당이다. 주존인 아미타부처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김영한의 무소유 삶은 욕망 위의 집 대원각(大苑閣)을
부처님의 큰 깨달음인 대원각(大圓覺)으로 변하게 했다.
“행복은 구하거나 노력한다고 얻는 것이 아니라
불만을 없애고 욕심을 절제함으로 얻을 수 있다”는
법정스님 말씀을 실천한 사람이 ‘길상화’ 김영한이다.
“한 사람의 맑고 조촐한 삶은 그 자신이 의식을
하건 말건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달빛 같은
혹은 풀 향기 같은 은은한 그늘을 드리우게 마련이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길상사가 유명하게 된 것은 욕망을 멈추게 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과거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권력가들이 왕래하여 권력과 술로 얼룩진 욕망의 바다 ‘대원각’이란 요정이었다. 인간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욕망이라는 전차는 엔진에 불을 붙여 걷잡을 수 없이 서울 도심을 질주하였다. 성북동 대원각은 이렇게 ‘욕망’ 위에 태어났다.
길상화(吉祥華)로 피어날 기생 진향(眞香)
소유주인 김영한은 열여섯 살 때 금하 하규일의 문하로 들어가 조선 권번에서 궁중 아악과 가무를 배우며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되었다. 한때 북(北)으로 간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져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고 맹세를 하였으나 이별은 너무 일찍 찾아왔다. 그녀는 1953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해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책을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영한은 현재의 길상사 자리에 있었던 한식당 청암정을 사들여 제3공화국 시절 대형 요정 대원각을 만들었다.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가 먼저 떠오르는 성북동 샛길을 따라 길상사로 향한다. 시인은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젠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라고 인간성 상실을 절규했다. 그렇지만 1960년대, 그때가 좋았다. 빠르게 변해가는 인공지능, 증강현실의 그늘 속에서 무섭게 황폐해가는 인간의 모습에 내가 인간인지를 자문해봐야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고민할 즈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욕망의 열기를 식혀주는 아름다움이 있는 길상사가 있다.
1천억원 대 대원각, 염주 하나와 맞바꾸고

원효성사는 ‘발심수행장’에서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을 장엄한 것은 무수한 겁의 바다에서도 욕망을 버리고 고행했기 때문이요, 수많은 중생이 불타는 집에 윤회하는 것은 무량한 세상에 탐욕을 버리지 않은 까닭”이라고 했다. 가진 것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소유를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릇이 비어있을 때 바로 가득 담을 수 있다는 무소유를 알았다.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늘의 보배로운 비는 허공에 가득하여 골고루 뿌리지만 중생은 자신이 받을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 아무리 하늘에서 내리는 보배가 많더라도 그것을 받을 마음 그릇의 크기에 따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모든 것을 가볍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받아 달라”, “못 받겠다.” 9년간의 밀고 당김은 아름다웠다. 1000억원대의 대원각을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염주 하나와 맞바꾸었다. 김영한은 정신을 거래하여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와 부처님의 적멸궁을 장엄하였다. 1995년 마침내 진향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고 부처님의 자식이 되었다. 길상화란 이름은 ‘불길한 것을 파괴하고 길상한 것을 성취한 꽃’이란 의미로 또 다른 무소유의 주인공 김영한 보살을 말한다.
요정 대원각은 ‘깨달음의 집’ 길상사로…
이때부터 욕망의 집, 대원각은 깨달음의 집, 길상사(吉祥寺)로 바뀌었다. 분 냄새, 향수 냄새는 인간다운 향기, 진향(眞香)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염주 하나와 맞바꾼 절이 이렇게 탄생했다. 대원각 팔각정 여인들의 호들갑 웃음소리는, 길상사 범종의 깊은 울림으로 변해 찾아오는 이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있다. 푸름을 안고 지저귀는 뱁새는 포롱포롱 날며 길상사 숲속을 지킨다. 한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다시 돌아오게 한 곳, 무명의 화류계의 한 여인이 유명한 스님에게 공양을 올려 스님보다 더 유명해진 곳이 길상사이다.
김영한의 무소유의 삶은 욕망의 꽃동산 위의 집 대원각(大苑閣)을 부처님의 큰 깨달음인 대원각(大圓覺)으로 변하게 했다. “행복은 구하거나 노력한다고 얻는 것이 아니라 불만을 없애고 욕심을 절제함으로 얻을 수 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곧바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 길상화 김영한 보살이다.

길상사 일주문을 지나면 ‘ㄷ’ 형태 팔작지붕의 전통 한옥에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하고 깔끔한 집 한 채가 나온다. 길상사 극락전이다. 욕망의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 대원각이 현판을 바꾸어 다니 그대로 극락의 집이 되었다. 누구라도 한 생각 돌리면 깨달음이다. 부처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듯, 중생 안에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부처 본연의 자리가 있다.
마리아상 닮은 관세음보살상 눈길
아치형 쪽문 능소화 넝쿨이 싱그러움을 더해 주는 가운데 관음전 우측, 설법전 아래 서 있는 1.8m 크기의 화강암 석상이 눈에 들어온다. 중생구제에 여념이 없는 관세음보살이다. 마리아상과 비슷하게 조성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보관과 생각에 잠긴 듯 살짝 감은 눈, 목 주변 둥근 띠 모양의 옷은 국보(83호) 미륵반가사유상의 이미지이다. 긴 신체와 긴 귀, 흘러내린 머리카락, 오른손의 시무외인은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를 투영하였다. 그러나 아기를 안은 것처럼 큰 감로수병을 안고, 가늘고 긴 목, 길게 내린 천의(天衣)는 마리아상을 닮았다.
성모이든 보살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모든 중생에게 자비와 사랑을 전하는 분이면 누구든 족하다. 지금 길상사가 절간이니 관세음보살이지, 만약 성당이었더라면 틀림없이 성모마리아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성모님도 아니고, 관세음보살님도 아니다. 욕망이 일렁거렸던 이곳을 정토로 만들어준 김영한, 길상 관자재보살로 보일 뿐이다. 길상 관자재보살은 생사에 물들지 않아 청정한 법문으로 중생의 깊은 어둠을 깨뜨려 없애주는 보살이다.

하룻밤의 사랑은 하룻밤 생각나고, 천년의 사랑은 천년동안 생각난다. 진향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무소유를 실천하였다. 기생 진향이 길상화로 바뀌는 순간 욕망은 사라지고 길상사의 웅장한 범종 소리는 성북동에 울려 퍼졌다. 법정스님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맑고 조촐한 삶은 그 자신이 의식을 하건 말건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달빛 같은, 혹은 풀 향기 같은 은은한 그늘을 드리우게 마련이다.” 길상사에 가면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과 길상화 보살이 생각난다.
[불교신문 3721호/2022년6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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