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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유적과사찰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사찰] 용(龍)이 인도하는 예천 용문사

“이 세상 그 누구도 법륜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 읽을 겨를 없는 사람들 위해 조성
한번 돌리면 경전 읽은 것과 같은 공덕”

‘경전신앙 상징’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차별 없이
깨달음의 길 함께 갈 수 있다는 뜻 담겨
남에 대한 배려 절실한 현시대에도 주목

예천 용문사는 신라 말 두운(杜雲) 선사가 당나라에 가서 법을 받고 돌아온 다음 산천이 수려한 용문산 깊은 골짜기에 가시와 덤불을 베어내고 처음으로 암자를 짓고서 수행한 곳이다. 고려 1185년에 한림학사 이지명이 쓴 ‘중수 용문사기’에 고려 태조 왕건이 두운선사를 찾아 올 때 용이 나타나 왕을 인도하여 사찰 이름을 용문사(龍門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서쪽 윤장대.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전륜장(轉輪藏)’이라고도 불린다. 경장은 단면이 8각으로, 치밀하면서도 정교하게 짠 공포(栱包)를 놓고서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올린 다포(多包)계 건물의 모습이다. 곧 각 면에는 문이 하나씩 달려 있어, 마치 8각의 목조건물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 용문사의 얼굴 대장전과 윤장대

예천 용문사의 얼굴은 대장전의 국보 제328호 윤장대이다. 윤장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직 예천용문사에만 존재하는 경전신앙을 대표하는 조형물로 불단 양옆에 나란히 솟아올라 있다. 윤장대는 고려 명종 1173년 김보당의 난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조응 대선사의 발원으로 3만여 명의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재를 열고 별도로 윤장대 2좌(二座)와 이를 안치할 건물 3칸을 지어 학자 300인이 모인 7일간 법회를 열어 국란을 극복했다.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조성된 해인사 팔만대장경보다 64년 빠르게 부처님 말씀으로 국난을 극복했음을 알 수 있다.

윤장은 전륜장(轉輪藏)의 준말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 릴 수 있게 만든 대이다. 그 시초는 <치문경훈> ‘포선산 혜공선원 윤장기’에 양나라 쌍림대사(497~567) 전흡이 윤장대를 만들었고 대중들이 경(經)을 보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기문에는 윤장을 세우는 뜻을 밝혔는데 “잘못된 견해는 중생의 병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래의 약이니 약으로 병을 치료하면 곧 병은 치료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쌍림대사가 중생을 맞이하여 근기에 따라 방편에 의지하여 윤장을 나타내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륜에 의지하고, 또한 법륜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드러내 보이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자로 하여금 지혜를 깨닫게 하고, 그 법륜을 보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서 물러섬이 없게 한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용문사 대장전에는 지혜를 깨닫게 하는 윤장대와 불퇴전의 마음을 나타내는 윤장대 두 개가 있다.  <초전법륜경>에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법륜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쌍림대사는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으며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했으니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함께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형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잘 나타냈다.
 

윤장대 빗살무늬 실창문 사이로는 경전이, 창문틀에는 윤장대 찬탄시도 보인다.

➲ 몇 차례 수리했지만 원형 잘 보존

불탑 상륜부의 의미를 지닌 예천 용문사 윤장대는 곧 법을 본체로 삼는 법륜(法輪)이다. 정성스럽고 화려하게 부처님 말씀의 집을 만들었다. 대장전 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연꽃 위 팔각날개 사이에 난타, 발난타 등 팔대용왕이 지키고 연잎으로 난간을 둘러 법보를 받들고 있다. 경전을 보관한 곳의 8각문은 불교를 믿는 사람은 먼저 팔정도에 의해 수행하고 생활해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맨 위에는 보개(寶蓋) 지붕을 얹었다. 8개의 허주(虛柱)는 천상에서 내려온 연꽃이 피었고, 금빛 공포는 화려하고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다.

동쪽 윤장대에는 8면에 빗살무늬 살창문을 하였는데 창문틀에는 윤장대를 찬탄하는 시가 적혀있어 또 다른 멋을 느끼게 한다. 偶吟(우연히 읊다)/ 樓立松松下(소나무 사이 아래로 누각이 서니)/ 洞深碧翠中(푸르른 비취 속 골짜기는 깊어라)/ 名山第一處(이름난 산 제일가는 이곳에 다가)/ 虛付釋人宮(허공에 부처님 궁전 붙여 뒀구나).

서쪽 윤장대에는 살구, 매화, 중첩된 산, 작약, 백일홍, 모란, 국화, 연꽃무늬 창살문을 조각하여 법보에 지극한 예경을 나타냈다. 8면 문살 위에는 신선, 연꽃, 모란 등을 그려 아름답게 장식했다. 고려 1173년부터 조선 1670년까지 몇 번의 수리를 거쳤지만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윤장대는 국내 유일이라는 절대적 희소성과 상징성을 지닌 국보이다.
 

대장전 불단과 윤장대(국보 제328호).

➲ 아미타삼존불과 판각 극락구품불화

대장전 내부 중앙에는 숙종 10년(1684)에 단응 등 9명의 스님이 조성한 보물 아미타삼존불과 판각 극락구품불화가 있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촘촘한 나발에 반달형 계주와 원통형 정상계주 솟아 있다. 약간 숙인 자세로 하품 중생인을 하고 사각형 얼굴과 우뚝한 콧날은 약간 근엄한 모습이다. 좌측 자비문을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은 큰 관대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위에 아미타화불을 모셨고 양손으로 연 줄기 끝 연밥 위에 검은 색 정병이 들려 있으며, 종아리에 갑대(甲帶)를 착용하여 불퇴전의 중생구제 서원을 나타낸 모습이 특이하다. 우측 지혜문을 나타낸 대세지보살은 보관 위에 검은색 보병을 모셨고 양손에 든 연 줄기 끝에는 사각형 다라니가 있다.

대세지보살은 “모든 법으로 고통을 구제한다”는 뜻을 지닌 ‘아나기치로 대다라니’를 들고 있다. 염불삼매로 보살도를 이룬 대세지보살은 중생들이 이 대다라니를 지송(持誦) 함으로써 “모든 의심의 그물을 끊고 네 가지 전도(轉倒)된 독의 화살을 뽑아서 삼계를 벗어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옛 스님들은 형상불을 조성할 때 교리적인 내용을 명확히 알고 차이를 둠으로써 신앙심을 불러 일으켰다.

후불 판각 극락구품불화는 가로 218cm, 세로 265cm의 대형 판각불화로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팔대보살, 두 제자, 사천왕이 배치되어 조선전기부터 유통된 <권수정업왕생첩경도>에서 유래된 극락세계를 눈으로 보는 듯 화려하다. 불꽃이 이는 보주형 광배에는 연당초문, 태극문, 팔괘문, 귀갑문 등이 새겨져 있다.

특히 팔대보살 중 위단 좌측에는 연꽃에 금강저를 얹은 금강장보살, 무릎에 갑대를 한 미륵보살, 병 같이 솟아오른 정수리를 한 가섭존자가 무릎을 꿇어 공경하는 모습이다. 우측 위에는 무릎에 갑대를 한 제장애보살이 검(劍)을 잡고, 지장보살이 육환장과 보주를 들었으며, 꿇어앉은 젊은 아난존자는 합장 예경하는 모습이다. 하단 좌측에서 우측으로 비파를 든 동방지국천왕, 투구를 쓰고 검을 든 남방증장천왕, 여의주와 용을 잡은 서방광목천왕, 미소 띤 얼굴에 보탑과 보당을 든 북방다문천왕이 있다.

보주형 광배 위로 오색 빛으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광취불정(光聚佛頂)의 서기가 발산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중앙과 좌우로 과거칠불이 갑자기 나타나 극락세계를 증명하고 연꽃 보개는 상서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테두리 바깥에 있는 오색광배와 두 마리 극락조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대장전 내부 곳곳에 있는 용과 물고기는 용궁에 보관되어 있던 대승경전이 용문사 대장전으로 옮겨짐에 따라 용궁에서 따라온 파수꾼들이다. 대장전 외부 창방 좌우 뺄목에도 극락조가 연꽃 봉오리를 물거나 용이 여의주를 물고, 귀면이 연꽃 봉오리를 물거나 물고기를 물고 있는 조각이 있어 보는 즐거움을 준다.
 

대장전 윤장대 팔각 날개와 용왕.
용문사 대장전 전경. 안에 안치된 2좌의 윤장대로 더욱 유명하다.

[불교신문3673호/2021년7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