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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참회하는 생활…아름다운 삶

我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瞋痴

從身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아득한 옛날부터 내가 지은 모든 악업

크고 작은 그것 모두 탐진치로 생기었고

몸과 입과 뜻을 따라 무명으로 지었기에

나는 지금 진심으로 참회하고 비나이다. 

 -<천수경> 참회게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며 짐짓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삶이다.

그러나 중생은 업연의 관계로 어우러진 잘못에 대한 최선의 길은 참회(懺悔)다.

참회란 자기를 원점 즉 본연자성(自性)의 본래면목(面目)으로 되돌아 놓으려는 수행의 한 과정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불가 수행의 첫걸음은 참회로부터 시작되어 지고 구경성불 할 때까지 참회로서 수행정진 해 간다. 무명으로 부터 비롯한 연기가 이어져 노사우비고뇌에 이르게 됨에 그 근원은 생의 차원을 훨씬 넘어 참 인생의 본질에서 부터 사유가 출발하여야 한다.

참회는 자기가 의식할 수 있는 범주의 것만을 대상으로 할 수 없고 더욱이 금생에 자기가 태생(四生)으로 부터 야기된 관계 정립의 테두리를 한정 지어서 죄라든가 복(福) 따위를 대상으로 한다면 이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된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곧 참회하는 생활 속의 아름다운 삶을 뜻한다.

중생의 삶은 삶 그 자체로서 업의 개념이 성립되고 수행인은 이를 자정함으로써 자기 길을 간다. 계곡을 흐르는 시냇물이 겉으로 보기에는 맑기만 한 청정수 같으나 사실은 온 산천을 씻어 내린 하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물을 하수라고 의식하지 않은 이유는 물 자체가 갖고 있는 자정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잠재의식 속에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는 이가 없지만은 서로가 서로를 죄인으로 보지 않는 것은 모두가 참회하는 생활 속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회란 숙죄(宿罪)나 원죄(原罪) 따위에 대한 뉘우침 같은 개념에 국한된 것을 의미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죄의식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서 참회여서는 진정한 의미의 참회라 할 수 없다.

참회는 종교인을 교만하지 않게 하고 일체 마장을 제어해 주며 도업을 증장시켜주며 인품을 고상하고 우아하게 길러준다.

현재 우리 가풍(家風)에서 참회하는 생활 속의 아름다운 삶은 부처님의 무한한 공덕과 함께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교신문 2749호/ 9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