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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기록으로 보는 한국불교 100년/ 혜월스님 친필 ‘천중천’

 

 
근대 선지식 혜월스님의 친필 휘호.  자료제공=성공스님
 
 
세수 73세 때 친필 휘호
 
天·中·天은 부처님 상징
 
 
조선시대 억불숭유로 뿌리가 흔들린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중흥의 씨앗’을 뿌린 경허스님의 법제자인 혜월혜명(慧月慧明, 1862~1937)스님이 남긴 친필 휘호가 확인됐다. 경허스님의 법맥을 계승해 수 많은 납자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무심도인(無心道人)으로 유명한 혜월스님은 오직 참선 수행에 전념해 글씨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번에 확인된 휘호는 10년간 혜월스님을 시봉한 바 있는 성공(性空)스님이 소장해 온 것으로 ‘天中天(천중천)’이란 한문 글씨이다. 천중천은 ‘하늘 가운데 하늘’이란 뜻으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부처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번에 확인된 혜월스님의 필체는 무심도인의 경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자유롭다. 서툴고 붓을 잡고 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천진(天眞)함 그대로의 느낌이 가득 전해오는 필체이다.
 
‘천중천’ 글씨의 왼쪽에는 세로로 ‘七十三歲老翁慧月禪師天眞筆(73세노옹혜월선사천진필)’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즉 ‘혜월노스님이 73세에 조금도 꾸밈이 없이 쓴 글’이란 뜻이다. 혜월스님이 입적한 해가 1937년임을 고려할 때, 이번에 확인된 ‘천중천’ 글씨는 1935년 작품으로 보인다. ‘천중천’ 글씨와 ‘메모’ 내용의 필체가 다르다.
 
이는 혜월스님이 쓴 글씨 옆에, 휘호를 작성한 시기와 필자를 다른 사람이 적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이유로 혜월스님이 이 글씨를 썼는지 궁금하다. 1960년대 <대한불교(지금의 불교신문)> 지면에는 혜월스님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사진 위에 ‘천중천’이란 글씨가 있다. 이 글씨는 이번에 확인된 것과 같은 필체이다.
 
1862년 6월19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혜월스님은 13세에 덕숭산 정혜사로 입산해, 15세에 혜안(慧眼)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정진했다. 이후 24세 되던 해에 당대의 선지식인 경허스님을 만나 새롭게 발심해 정진하다 인가를 받고 스승의 법맥을 이었다. 27년간 덕숭산에 머물며 보림(保任)하던 혜월스님은 51세 무렵에 남쪽으로 주석처를 옮겼다. 양산 미타암, 내원암, 부산 선암사에 머물며 납자들을 지도했다.
 
스님은 1937년 홀연히 원적에 들었다. 이때 세수 75세. 법납 63세. 제자로 운봉(雲峰).호봉(虎峰).운암(雲庵).철우(鐵牛)스님 등이 있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 2706호/ 3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