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웃고삽시다

공연히 헛걸음만 하다 (公然虛行)

공연히 헛걸음만 하다 (公然虛行)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지극히 어리석고 게을렀다.


마침 숙부가 세상을 떠났는데,
연락을 받고도
문상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하도 답답해서
이렇게 책망했다.
"여보, 당신은 숙부님이
운명하셨는데도
문상 갈 생각을 안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어서 가서 문상을 해야지요."
그러자 이 사람은,
"뭐 문상 같은 건
그렇게 급히 서둘 일은
아니잖아?"
하면서 역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여러 번 권하고
독촉하니 부득이
일어나 상가로 갔는데,


미처 문상도 하기 전에
상주인 종제에게 묻는
것이었다.
"종제! 숙부님이 생전에
쓰시던 갓은
어디 있는가?


평소 좋아 보여서
내가 가져다 쓰고 싶어
그런다네."


"아, 형님. 늦었습니다.
건넛마을 이서방이 탐을
내면서 달라기에
벌써 주어 버렸는데요."


"응, 그랬군. 그러면
숙부님이 쓰시던
여름 휘항(凉揮項 : 목에
땀이나 옷이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목뒤에 착용하는 것)은 어디 있는고?
내 가져다 쓰고 싶은데."


"형님, 그것도 목수에게
주었습니다.


통나무를 켜서 관을 짜느라
너무 수고가 많기에
주어서 보냈답니다."
"목수에게 주었다고?


그렇다면 숙부님의
낡은  진신(泥鞋,니혜 : 비올 때)
어디 있지? 
신는 기름 입힌 가죽신
그게 아직 멀쩡하던데
내가 신으면 좋겠어."
"형님, 그 진신도 말입니다.


염습을 하느라 많이 애쓰신
동네 노인께서
가져가겠다고 하시기에
드렸습니다."


종제가 이미
남에게 모두 주어
버렸다는 말에,


이 사람은 하나도 가져갈
것이 없다고
투덜대고 일어서면서,
"그렇다면 오늘은
공연히 헛걸음만 했구나."


라고 말하고는
문상도 하지 않은 채
시무룩해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본 조문객들이
혀를 차지 않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다

'웃고삽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시래의 유래 이야기  (0) 2021.01.10
짐승만도 못한 놈과 짐승 보다 더한 놈  (0) 2021.01.04
문자 해석하는 첩 (才女釋義)  (0) 2020.12.21
유머 모음  (0) 2020.12.14
치마올린년 과 바지내린놈  (0) 20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