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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음식 먹기전 주변 뿌려 안녕 기원 - 고수레

 

음식 먹기전 주변 뿌려 안녕 기원 - 고수레


야외에 나가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조금 떼어 주변에 뿌리면서 ‘고수레’라고 하는 전통풍속이 있다. 고시래, 고스레, 혹은 고씨네라고도 하는데 부르는 이름은 각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도 신들을 위로하고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는 동일하다. 고수레란 말이 여기에만 쓰인 것은 아니다. 쌀로 떡을 찔 때 골고루 잘 섞이도록 물을 뿌리는 것도 고수레라고 하였고, 갈아엎은 논흙이 물에 잘 풀어지도록 하는 것도 고수레라 하였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왕세자의 가례에서도 세자빈이 올린 술을 왕세자가 받을 때 고수레를 하였으며 조선 후기 문신 백호 윤휴의 <백호전서>에 실린 ‘내칙(內則)’의 독서기(讀書記)에서도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예법에 술과 안주를 고수레한다고 적고 있어 오래전부터 내려온 예법의 하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고수레의 유래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이설이 존재한다. 서정범 교수는 무당이 병자를 치유하는 병굿에 쓰는 참나무가짓대를 ‘고수릿대’라 부르는데서 고수레가 유래했다하여 건강과 복을 주는 신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고, 우리의 전통 가면(탈) 중 ‘고시래탈’이 있는데 이는 단군조선시대에 불 사용법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고시’씨를 형상화한 것인데 이 고시 씨를 기리기 위한 풍속으로 고수레가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그 진위를 알기가 어렵다.

진묵대사 어머니 기리는 ‘고시래전’ 흥미

몽골, 페루도 우리와 비슷한 풍속 있어


이외에도 고수레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이 크게 3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옛날 어느 마을에 자손이 없는 부유한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즐겨 돕다가 죽자 사람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고수레를 하기 시작했다는 설과, 두 번째는 경기도 양평지역에서 채록된 설화로 옛날 고씨 성을 가진 처녀가 시냇물에서 떠내려 온 복숭아를 먹고 아이를 잉태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복숭아의 후예라 하여 도손(桃孫)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 아이가 성장하여 풍수지리로 큰 도를 이루었고 명당자리라 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매장하지 않고 들에 묻었는데 이 무덤을 돌 본 이가 풍년이 들자 이를 사람들이 따라 한데서 유래했다는 설, 세 번째로는 두 번째 설화와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이야기의 주인공이 신이한 행적으로 유명한 진묵대사인 점과 이야기의 무대가 김제의 만경평야라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점이 다른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 김제 만경평야에 있는 ‘성모암(聖母庵)’에는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소가 있음은 물론 진묵대사의 어머니를 기리는 ‘고시래전’도 있다 하니 흥미롭기만 하다.

고수레의 기원이 어찌되었든 다른 이를 더불어 생각하는 마음,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삼가는 마음을 담긴 고수레의 전통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아닐 수 없으며, 불교의 자비정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풍속이라 할 수 있겠다.

가까운 몽골에서는 새해를 맞이하거나 중요한 행사시 술을 사방에 뿌리는 풍속이 있고, 저 멀리 남미의 페루에서도 술과 음식을 먹기 전 땅에 뿌리며 대지의 신에게 축원을 하는 풍속 등이 우리의 고수레 전통과 비슷하다고 하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지닌 천성의 유사함에 신기할 따름이다. 쌀과 흙을 잘 섞어 떡과 농사가 잘 되도록 하듯이 우리 사회가 어려울 수록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서로를 격려하고 물과 우유처럼 화합하도록 고수레의 정신을 되살려 볼 일이다.

김유신 /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이사


[불교신문 2478호/ 11월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