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가봐야 할 사찰] 꽃으로 피어난 부처님의 궁전 논산 쌍계사
논산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 부처님 머리 위에 화려한 보개(寶蓋)가 있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대웅전을 지은 뜻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제일 존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셔서
복을 받고, 또 대웅전 기둥을 ‘칡’으로 세운 것은
갈등의 연속인 인간의 삶의 칡덩굴을 베어 전각의
기둥으로 사용함으로써 다툼 없고 괴로움이 없는
부처님 세계를 사바에 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밤에 넉넉히 내려 촉촉이 적셔주는 비는 만물을 길러주는 감로수이다. 특히 농번기에 내리는 단비는 흙냄새를 그리워하게 한다. 비가 내린 뒤 달라지는 대지와 부풀고, 피어나고, 움직이는 신선한 변화는 사람의 마음에 생동과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불명산 쌍계사(佛明山 雙溪寺). 부처님이 깨달은 산에 지혜와 복덕의 두 시냇물이 만나는 지점에 절을 지었으니 계곡물 불어나듯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이 중생의 마음을 넉넉히 적셔준다.


사계절 연화장세계
쌍계사 하면 봄날 벚꽃으로 유명한 하동 쌍계사를 떠올리곤 하지만 논산 쌍계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꽃이 피어나는 부처님의 궁전이다. 대웅전 건물은 겹처마 팔작 다포 집으로 덤벙덤벙 올려놓은 덤벙주초 위에 가공하지 않은 기둥과 화려하게 가공한 문살이 어울려 묘한 멋을 부렸다. 소박함 속에 화려함을 드러낸 언밸런스(Unbalance)의 묘미인가? 계획된 아름다움의 조화인가? 비단에 수를 놓듯 전면 5칸 문짝을 빈틈없이 아름답게 조각한 꽃살문은 중생들이 정성스럽게 부처님께 올리는 꽃 공양이다. 어간(御間)의 두 문에는 솟을 모란꽃살문, 좌우 칸과 양 측 칸의 10짝의 문에는 빗 모란 연꽃살문과 빗 국화 꽃살문, 작약 꽃살문 등 여러 가지 꽃들로 장식하여 사계절 연화장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불설제불경(佛說諸佛經)>에 부처님은 목련존자에게 “대목건련아, 나는 과거에 서원을 세워 이러한 여러 부처님께 칠보의 꽃으로써 공양한 뒤에 바야흐로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성취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중생들이 부처님께 바치는 꽃은 깨달음을 성취하는 필수 조건으로 크나큰 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너도나도 꽃을 바치기를 희망하였다. 쌍계사의 이 꽃살문은 그 조각의 뛰어남으로 인해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에 전시되기도 했다.
대웅전의 적멸궁 만월궁 칠보궁
꽃살문을 열고 대웅전 내부로 들어서면 또 꽃으로 장엄된 부처님의 세계가 펼쳐진다. 전각 내부 모든 공포의 살미 제공 끝에는 수많은 연꽃 봉오리들이 화려하고 치밀하게 조각되어 있어 아예 꽃 속에 삼세불이 묻혀있는 느낌이다. 우물천장 반자에도 수많은 연꽃과 모란이 활짝 피었다. 기쁨에 겨운 극락조들은 춤을 추고, 무수한 화불이 포벽에 출현하여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인다.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인 삼세불을 모셨는데 대들보로 구획을 정해서 하나의 세계에는 한 분의 부처님만 계시는 것을 표현하였다. 부처님 머리 위에는 화려한 보개(寶蓋)가 있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중앙의 제일 큰 보개에는 ‘적멸궁(寂滅宮)’이란 편액이 걸려있는데 이는 ‘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의 도를 성취한 궁전’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좌측 보개의 ‘만월궁(滿月宮)’의 ‘만월’이란 보름달이 밤의 어두움을 제거하듯이 동방 정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께서 모든 중생의 병고를 제거해 준다는 뜻이다. 우측 ‘칠보궁(七寶宮)’은 칠보로 장엄된 서방 극락세계 궁전이란 뜻으로 아미타불이 계신다는 의미이다.
쌍계사 전설에 따르면 꽃으로 장엄된 대웅전을 지은 이는 인간이 아니라 하늘 옥황상제의 아들이라고 한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이 사바에 대웅전을 지은 뜻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제일 존귀하신 석가모니불을 모셔서 복을 받고, 또 대웅전 기둥을 칡 기둥으로 세운 것은 갈등의 연속인 인간의 삶에 칡덩굴을 베어 전각의 기둥으로 사용함으로써 다툼 없고 괴로움이 없는 부처님 세계를 사바에 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파격적이고 특이한 신중도
또한 논산 쌍계사에는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파격적이고 특이한 신중도(神衆圖)가 있어 눈길을 끈다. 중앙에 있는 주신(主神)은 무기를 들지 않고 붉은색 관복에 황금색 두 줄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있어 이채롭다. 오른손엔 백옥으로 된 규(圭)를 움켜쥐고 당당하게 서서 정면을 응시한 근엄한 모습이다. 신발은 어혜(御鞋)인 석()을 신고 옥으로 장식된 옥대(玉帶)를 했다. 그 뒤 좌측의 신중은 신하의 모습으로 금색 목잠(木箴)에 금량관(金梁冠)을 쓰고 서각대(犀角帶)를 두른 청색 관복에 두 손으로 홀(笏)을 잡아 예를 표하고 있다. 나머지 두 신중 역시 무기는 들지 않고 홀을 들거나 손을 잡고 측면을 바라보고 있어 익선관을 쓴 중앙의 신을 감싸는 군신(君臣)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신중도의 주인공이어야 할 위태천은 날개 모양의 투구를 쓰고 금강저를 비껴 끼고 합장한 채 맨 뒤 열 왼쪽으로 밀려나 있어 의아하다. 또 두광이 표현된 제석천도 맨 뒤 열 오른쪽에 서서 합장을 한 채 전면을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이다. 이외에 무장을 한 열 명의 신중들은 익선관을 한 주신을 중심으로 앞과 좌우 측면을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맨 뒤 열에는 다섯 명의 동남동녀가 번을 들거나 일산(日傘)과 파초선(芭蕉扇)을 들고 있다.
‘대한독립 열기’ 반영한 것인가?
무슨 까닭에 임금의 복장을 한 인물이 논산 쌍계사의 신중도에 나타났을까? 신중도에는 “계해년(1923) 공주 거주 경오생 김윤환이 발원하여 조성했다”는 화기가 있다. 청암 김윤환(1870~1936)은 조선 말기 고종의 신임을 받은 신하로 왕실의 재산관리를 맡은 최고 책임자였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익선관을 한 신중도의 주인공은 고종황제이고 뒤에 오량관(五梁冠)을 쓴 인물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익선관을 쓴 조선의 임금이 불교의 신중신으로 표현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로 이 신중도가 제작될 당시 조선은 독립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끝내 대한제국 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19년에 고종이 승하하자 불심이 돈독했던 김윤환은 고종의 혼백을 논산 쌍계사의 신중으로 다시 살아나게 했다.
호은 정연스님과 보응 문성스님에 의해 조성된 논산 쌍계사의 신중도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가 불교의 신으로 재창출되어 대한독립을 바라는 민중의 염원이 신중도에 투영된 특별한 불화이다. 또한 김윤환은 이 무렵 쌍계사 대웅전 편액과 1924년에 쌍계사 편액을 1932년에 쌍계사의 모든 불사를 마치고 ‘쌍계사 재중수기’를 쓴 바 있고 이 현판은 현재 쌍계사 봉황루에 걸려있다.
논산 쌍계사는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의 시냇물이 흘러넘치고 대한독립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사철 꽃피는 아름다운 절이다.
[불교신문 3719호/2022년6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