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적과사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사찰] 재미난 호랑이를 만나는 남양주 흥국사

伯松金實根 2022. 4. 29. 08:00


남양주 흥국사 대웅보전 삼존불. 삼존불 뒷면에 화려하게 투각된 금빛 보주형 목조 광배가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면 광배에는 엄숙한 모습의 일곱 분의 화불과 장난 끼 섞인 모습의 황금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흰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의 모습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임인년 순례는 ‘불교미술의 보고’ 남양주 흥국사로…

 

십육나한도 중 제4 소빈타존자도는 아육왕경 

‘호자인연(虎子因緣)’이야기를 그렸다. 존자는 

휘어진 낙락장송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지만 

약간 찌푸린 얼굴엔 미심쩍은 표정이 역력… 

 

아래를 보니 어린 동자가 호리병에 든 흰 젖을 

새끼 호랑이에게 먹이고 있다. 새끼 호랑이는 

기분이 좋은지 금빛 눈으로 연신 붉은 혀를…

 

서울 근교에 있는 흥국사는 599년 원광(圓光)법사가 창건하였는데 주변 산세가 빼어나고 수석(水石)의 경치가 아주 아름다워 ‘수락사(水落寺)’라 했다고 전한다. 매월당 김시습도 흥국사 동쪽에 있는 이 산에 반해 스스로 호를 ‘동봉(東峯)’이라 지었다고 한다. 

흥국사가 커지게 된 것은 1568년 선조 왕이 이 절을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능침사찰로 정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흥덕사(興德寺)란 편액(扁額)을 하사하여 왕실의 재궁이 되면서 부터이다. 선조는 아버지 ‘묘’를 왕의 반열인 ‘능’으로 고치려고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조선왕조 최초로 아버지에게 ‘대원군’이란 호칭을 붙여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왕궁의 땔감을 살 때 나무꾼이 ‘덕흥군의 묘소를 지나왔다’고 하면 땔감을 사지 않았고 ‘덕릉을 지나왔다’고 하면 가격을 높게 쳐주고 술과 음식을 주었다고 한다. 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 모든 사람이 묘를 능이라 불러 아버지를 왕의 반열에 올렸고 흥덕사도 ‘덕절(德寺)’로 불렀다고 하니 선조의 효심을 느끼게 한다. 이후 1626년에 선조의 손자인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자 이 절을 다시 흥국사(興國寺)로 개명하여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대방(大房). 긴 돌로 기단을 올린 ‘H’자형의 건물로 승방, 염불당, 왕실의 거주 공간 등으로 대웅보전보다 약 4배가량 큰 규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대웅보전보다 4배 큰 ‘대방’ 

1793년에는 정조대왕의 내탕금 하사로 기허(騎虛)스님은 대대적으로 전각을 중수하였다. 그러나 1818년 대웅전ㆍ명부전 등 많은 전각이 불에 타고 만월보전(滿月寶殿)만이 피해를 면하였다. 순조는 자신의 탄생을 발원한 흥국사의 대웅전, 시왕전 등 전각을 1822년 다시 짓고 어필 ‘흥국사’ 편액을 하사했다. 절 앞에는 대방이 대웅보전을 가로막은채 왕궁의 침전처럼 우뚝 솟아 있다. 대방은 긴 돌로 기단을 올린 ‘H’자형의 건물로 승방, 염불당, 왕실의 거주 공간, 부엌 등으로 대웅보전보다 약 4배가량이 큰 규모다. 대방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에 의해 지어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철인, 신정왕후의 시주와 후원으로 1879년에 새로 지어졌다. ‘흥국사’, ‘영산전’, ‘만월보전’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다. 

이 대방을 돌아가면 대웅보전이 나온다. 대웅보전에는 18세기에 조성된 목조 삼존불을 모셨는데 미소를 머금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화려한 보관을 쓴 문수ㆍ보현보살이 좌우 손에 연꽃을 들고 협시하고 있다.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삼존불 뒷면에 화려하게 투각된 금빛 보주형 목조 광배이다. 안쪽에는 굽이치는 물결 위에 연꽃과 모란꽃이 큼직하게 피어있고 연꽃 위엔 화불이 입체적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바깥쪽에는 타오르는 불꽃 속에 연이은 연꽃과 모란꽃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특히 광배에는 엄숙한 모습의 일곱 분의 화불과 장난 끼 섞인 모습의 황금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흰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의 모습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대웅보전 지붕의 구법행자상. 불경을 구하러 천축으로 가는 서유기의 삼장법사 일행을 묘사한 조각상이다.

천축으로 가는 구법행자상 ‘눈길’ 

대웅보전 귀마루지붕 위에는 <서유기(西遊記)>에서 불경(佛經)을 구하러 천축(天竺)으로 가는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스님의 일행이 올려져있어 눈길을 끈다. 갑옷을 입고 위엄 있게 구법의 길을 개척하는 늠름한 손행자(孫行者=손오공)부터 저팔계(八戒), 사화상(沙和尙=사오정), 마화상(馬和尙=필마온), 삼살보살(三煞菩薩=현장스님) 등이 있다. 이들을 ‘잡상(雜像)’이라 부르지만 잡상이란 용어는 당치도 않는 말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법을 구하는 이들을 ‘구법행자상(求法行者像)’이라 불러야 맞는 말이다. 

영산전에는 16세기에 진흙으로 조성된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이 모셔져 있는데 이마가 넓고 턱이 좁은 역삼각 얼굴로 늘씬한 신체비례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나무로 조성된 45 ~47cm크기의 십육나한과 제석천, 사자, 인왕이 있다. 1650년 왕실 소속의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중수된 십육나한은 원래 전라도 고산 안심사 약사암에 있었는데 1892년에 이곳 흥국사로 이운되어 봉안되었다. 이 나한들은 사실적이면서도 풍부한 얼굴 표정과 다양한 자세, 독특한 지물, 기다란 신체에 갸름한 얼굴 등이 특징이다. 어떤 종교적인 권위와 상징을 거부한 듯 천차만별의 모습과 표정은 해학과 익살의 즐거움을 더해주어 오히려 깊은 수행에서 오는 해탈과 탈속의 신통력을 느끼게 한다.

 

아육왕경 ‘호자인연’ 이야기 

또한 조선말 서울ㆍ경기지역 불화승을 대표한 경선당 응석스님이 1892년에 그린 흥국사 십육나한도 중 제4 소빈타존자도는 <아육왕경> ‘호자인연(虎子因緣)’이야기를 그렸다. 존자는 휘어진 낙락장송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지만 약간 찌푸린 얼굴엔 미심쩍은 표정이 역력하다. 오호라, 아래를 보니 어린 동자가 호리병에든 흰 젖을 새끼 호랑이에게 먹이고 있다. 새끼 호랑이는 기분이 좋은지 금빛 눈으로 연신 붉은 혀를 내밀어 받아먹지만 존자는 “젖병은 잘 삶았는지? 젖은 잘 주는지? 트림은 시켰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처럼 흥국사 십육나한도는 불보살의 근엄한 모습과는 달리 특색 있는 동작과 표정으로 재미를 주고 있다. 

흥국사는 경기지역 불화승(佛畵僧)들을 길러낸 곳으로 불화를 그리는 스님이 많았고 그림을 잘 그려 “나무하고 불 때는 덕절의 중도 불막대기로 시왕초(十王草)를 낸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영산전 외벽에는 다양한 벽화가 남아 있어 즐거움을 준다. 청룡의 등을 탄 금강역사가 칼을 쥐고 달리는 모습, 용의 발을 묶어 안간힘을 쓰며 잡아당기는 아라한, 용의 뿔을 잡고 여의주를 빼앗는 아라한,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 네발이 묶인 채 금강역사에게 들려서 잡혀가는 호랑이, 백호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스님, 등 다양한 벽화는 흥국사 불화승의 스케치북인 것 같아 재미있다. 

또 다른 볼거리 ‘사왕상과 지옥도’  

흥국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시왕전에서 지옥의 죄인을 심판하는 시왕상과 지옥도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지장전이나 명부전으로 부르는 곳인데 흥국사에서는 지옥 시왕에 초점을 맞추어 시왕전(十王殿)이란 편액을 달았다. 지옥문을 지키는 옥졸, 부월을 든 저승사자, 죄를 기록하는 녹사, 밝은 구슬 상자를 들고 있는 무독귀왕, 젊은 도명존자, 지옥에서 설법하는 지장보살, 자신의 죄를 비춰보는 업경대, <금강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염라대왕과 날개가 달린 투구를 쓴 마지막 심판자 오도전륜대왕은 특별한 관을 쓰고 있어 눈이 띤다. 호랑이는 삼재를 막아주는 존재로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를 맞아 부처님의 가피 충만한 불교미술의 보고(寶庫) 남양주 흥국사를 다녀오심도 좋을 듯하다.

 

[불교신문 3713호/2022년4월26일자]